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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대학살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 루주 정권이 집권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크메르 루주는 폴 포트가 이끄는 공산주의 정권으로,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약 200만 명이 넘는 캄보디아인이 굶주림, 과로, 고문, 처형 등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는 당시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약 25%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폴 포트 정권은 농업 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을 목표로 도시 인구를 강제로 시골로 이주시켰습니다. 사람들은 강제 노동과 가혹한 조건 속에서 일해야 했으며, 반정부 인사나 지식인으로 의심받는 사람들은 잔혹하게 처형당했습니다. 특히, 안코르와트와 같은 고대 유적지 인근에서는 수많은 집단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지식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영어를 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없다’, ‘안경을 썼다’, ‘피부가 희다’ 등의 이유였고, 의사는 800명 중 40명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1979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 크메르 루주 정권은 붕괴되었습니다. 2006년에는 캄보디아 특별법정이 설립되어 책임자들을 처벌하기 시작했습니다.
'킬링필드'라는 표현은 살아남은 캄보디아의 사진기자가 민주 캄푸치아의 패망 후 태국으로 탈출할 때 보았던 희생자들의 시체 더미와 유골을 지칭하기 위해 만든 표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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