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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4월 29일, 의거 당일, 김구 선생과 마지막 아침식사를 한 윤봉길은 떠나면서 자신의 시계를 풀어 김구선생과 바꾸자고 합니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니 저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 쓸수 없으니까요”
스물네살의 나이였던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황 생일 축하 행사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고위 인사들을 처단했습니다. 이 의거로 일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등 주요 인물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용감한 행동은 세계에 한국 독립운동의 존재를 알렸고, 장제스 중국 총통이 "조선 청년이 해낸 일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이라고 극찬할 만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정부는 한국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었고, 윤봉길 의사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영웅으로 남았습니다.
윤 의사는 거사 이틀 전,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을 인
용합니다. "너희도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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